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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가를 아십니까? 조회 2143
첨부파일 등록일 2011/09/30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애국가1930년대 안익태 선생님께서 유학 중 작곡한 노래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국가로 제정된 노래입니다.

 

이 외에도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애국가가 10여곡 이상이 된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최초의 애국가는 과연 어떤 곡이었을까요?

 

 

 

1897년 조선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국왕이었던 고종은 황제로 등극하며 제국의 성립과 함께 그 위상에 걸맞게 대한제국을 대표할만한 국가(國歌)의 제작 및 보급의 필요성 느꼈다고 합니다.

 

이 당시는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본격적으로 수용되고 또 새로운 음악문화인 양악(洋樂) 문화가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이에 고종황제는 1902년 1월 27일 문부백관들에게 국가제작을 명하여 가사를 완성하게 하고 당시 대한제국 황실 소속 양악대 지휘자였던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이자 대한제국의 국가를 탄생시켰습니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1902년 8월 15일에 정부에 의해 정식으로 제정․공포가 되어 그 악보집은 우방 50여 개국과 전국에 배포되었으며, 국가(國家)의 의식이나 국제적인 행사가 행해지는 장소에서 자주 연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애국가 원가사>

 

그러나 대한제국의 애국가는 국가(國歌)라는 영예를 누리다가 일제가 1905년 통감부를 설치한 이후 가창을 통제시켰으며 1910년 강제 합병 직후 강제로 금지를 당하여 가사도 멜로디도 잊혀지는 비운의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한제국 애국가>가 우리나라 국가 제1호였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노래․잊혀진 노래가 된 이유는 일제의 모진 탄압 속에서 금지곡이 되었다는 점, 가사가 생소하다는 점, 버전이 많다는 점이며 무엇보다 원래의 악보가 전해 오고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합니다.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으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대한제국 애국가를 비롯하여 나라사랑을 노래하는 다양한 버전의 애국가, 일제강점기에 불리었던 독립군가 및 광복군가, 그 당시에 널리 불리었던 창가 등을 발굴 하여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원은 공유저작물 창조자원화 사업을 통해 악보 발굴조사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발굴되는 악보는 그 당시의 악보뿐만 아니라 현대적 악보로 변환하여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할 예정입니다.

 

새로이 발굴되는 다양한 애국‧애족의 노래가 널리 전파되어 다양한 버전의 민족 사랑의 노래로 재탄생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대한제국 애국가 현대적 악보>

 

정보유통지원실 수석연구원 이종서(js2fred@kdb.or.kr)